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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thub(깃허브) 창업부터 75억 달러 인수까지

by Lora Baek 2022.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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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허브(Github)의 핵심은 개발자들을 위한 구글 문서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개발자들은 코드 기반의 협업, 공유 및 유지보수를 대규모로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 이상으로, 코드를 위한 앱 스토어, 개발자를 위한 이력서, 그리고 개발자들이 발명한 것들을 세상과 공유하는 소셜 네트워크의 기능을 하고 있다.

 

깃허브(Github)의 스토리는 여러 면에서 독특하다.

- 2018년, 스카이프(Skype)와 링크드인(Linkedin)에 이어 75억 달러라는 금액으로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의 세 번째로 큰 인수 대상이 되었다.

- 2008년 원격근무 회사에서 2010년 하이브리드 회사로 성공적으로 전환했는데, 이는 하이브리드라는 용어가 나오기도 전의 일이다.

- 투자를 받기도 전에, 누구의 도움도 없이 4년 동안 회사를 성장시키고 3백만 개 이상의 레파지토리(repos), 일명 프로젝트를 확보했다.

 

 

 

창업자 톰 프레스턴 워너(Tom Preston-Werner, 이하 Tom)

1999년

회사 설립에 대한 첫 고민의 계기는 그가 하비 머드 대학(Harvey Medd University) 2학년일 때, 여름 인턴십을 끝내고 자바 개발자로서의 풀타임 오퍼를 받았을 때 찾아왔다. 그 당시는 닷컴 버블이 터지기 직전이었기 때문에, 자퇴를 하고 핫한 테크 회사의 직원이 될 것인지, 혹은 장래에 비슷한 포지션을 찾기 위해 학교를 2년 더 다닐지에 대한 딜레마에 빠졌다. 그는 직원이 되는 것을 선택했다.(잘못된 선택..🙈)

 

닷컴 버블이 터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닷컴 버블이 터지며 Tom이 다니던 회사는 헐값에 인수되고 Tom은 해고되었다.

Tom처럼 이 끔찍한 시기에 해고된 몇명의 친구들은 팀을 이루어 Tome의 짧은 개발자 경력에 의지해 큐브식스 미디어(Cube6 Media) 라는 테크 컨설팅 사업을 시작했다. 큐브식스 미디어(Cube6 Media)는 거의 모든 일을 했다. 전단지를 만들어 달라고 하면 그렇게 하고, 웹사이트를 만들고자 하면 그렇게 하고, 미디어 전략이 필요해도 그랬을 것이다.

 

이렇게 초점이 명확하지 않았던데다, 이 회사의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 22세의 프로그래머라는 사실은 사업이 빠르게 성장하기 힘들었음을 의미한다. Tom의 다른 두 친구와 공동 창립자는 '진짜 직업'을 얻기 위해서 떠나기로 결정했지만, Tom은 혼자서 견뎌보기로 했다.(이 또한 잘못된 선택.. 🙈)

 

 

 

부채 정리

다음 3년은 힘든 시기였다. 첫 해가 끝나갈때쯤, Tom은 2만 3천 달러(한화로 약 3천만원)의 세금 청구서를 받았을 때도 자신이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1인기업은 매달 예상 세금을 납부해야 함) 22세의 이 젊은 사업자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 3년째 될 때쯤, Tom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했던 국세청과 8개의 카드 회사에 진 빚은 5만 달러에 이르렀다.

감당할 수 없는 부채도 이 열정적인 기업가를 포기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2003년~2004년 당시 주택시장은 활황이었다. 매달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고 있었고, 은행은 서류 없이 대출하는 제도를 도입하면서 소비자가 대출을 받도록 장려했고 부동산은 계속 우상향하고 있었다.

 

Tom의 집주인이 부동산을 팔면서 Tom은 5만 달러 빚을 해결할 일부 지분 부채를 떠안게 되었는데, 집값이 상승하면서 지분의 일부를 사용해서 5만 달러의 빚을 갚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이후 몇 년 동안 주택시장이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2006년에 그는 주택 대출을 다시 실행하고 일부를 신용카드 빚을 상환하는 데 썼다. 수년 간의 투쟁 끝에 겨우 조금 나아진 것이다.

 

패배를 인정하다(Throwing in the towel)

Tom이 컨설팅 사업을 하고 있던 때는, *루비 온 레일즈(Ruby on Rails, 이하 RoR)가 주목받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이 새로운 프레임워크는 Tom을 매혹시켰고, RoR 샌디에고 커뮤니티의 적극적인 회원이 되어 큐브식스 미디어(Cube6 Media)에서 맡은 모든 프로젝트에서 RoR를 사용하고자 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기존의 회사들은 새로운 프레임워크를 사용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래되었고 검증된 프레임워크를 원했다.

 

그래서 Tom은 큐브식스 미디어(Cube6 Media)를 포기했다. 부채도, 3년이 지나도록 얻지 못한 성공도 아닌 RoR과 일하고 싶다는 사실과 컨설팅 고객들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루비 온 레일즈(Ruby on Rails) : 루비(Ruby)라는 코딩 언어로 작성된 오픈소스 웹 어플리케이션 프레임워크.

 

그라바타(Gravatar)

RoR이 매우 빠르게 개발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몇 주에 한 번씩 Tom은 샌디에고의 RoR 모임에 가서 다른 개발자들과 소통했다. 가끔씩 사람들은 본인이 작업한 내용을 발표하기도 했다. Tom이 만들고 이 커뮤니티에 가져왔던 가장 유망한 프로젝트가 그라바타(Gravatar)였다.

 

그라바타(Gravatar)는 인터넷에서 당신을 추적하는 아바타로, 그라바타(Gravatar)를 사용하는 웹사이트에서 계정을 만들 때마다 해당 서비스에서 아바타를 캡쳐한다. 그리고 한 웹사이트에서 아바타를 변경하면 다른 모든 웹사이트에도 업데이트를 하도록 한다. 간단하고, 깔끔한 방식이다.

 

유일한 문제는 돈을 벌지 못했다는 것이다. 네트워크 비즈니스를 시작할 때 만나는 전형적인 딜레마였다. 회사들은 그라바타(Gravatar)에서 중요한 가치를 찾지 못했다. 그라바타(Gravatar)의 진정한 가치는 웹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통합될 때 나타나는데, Tom이 이러한 임계점에 도달할 때까지는 수익 창출이 불가능했다.

그라바타(Gravatar)의 이용자가 32,000명 이상으로 증가하면서 운영 부담도 증가했다. 2006년 말에는, Tom이 그 날 업로드된 새로운 프로필 사진 300~400개를 승인하는 데 매일 2~3시간을 소비해야 했다.

 

1번째 시도 : 그라바타(Gravatar) 매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라바타(Gravatar)를 계속 운영했던 이유는 Tom이 이 프로젝트를 부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관문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가 5만 달러의 가치만 찾을 수 있다면 그가 가진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었다. 마침내 빚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라바타(Gravatar)를 인수할 가능성이 있는 회사 중 가장 유력한 곳은 워드프레스(WordPress)의 모회사인 오토매틱(Automattic)이었다. 블로깅은 2006년에도 존재했으나, 블로그 게시물 댓글의 99%가 비었거나 기본 프로필 사진이 없었기 때문에 그 회사에 충분히 합리적인 가치를 제공할 수 있었다. 그래서 Tom은 고민 끝에 RoR 모임의 인맥을 통해 샌프란시스코(SF)에서 오토매틱(Automattic)의 경영진들과 미팅을 잡았다.

 

 

 

 

 

*Bay Area for life

몇 주 후 Tom은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갔지만 불행히도 회의는 Tom이 바라던 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오토매틱(Automattic)은 흥미를 느꼈지만 그라바타(Gravatar) 인수에는 관심이 없었다.

한 가지 다행이었던 점은 Tom의 친구들이 그가 방금 파워셋(Powerset)에 합류한 새로운 인기 있는 회사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가보자고 권유했다는 것이다.

 

파워셋(Powerset)은 차세대 Google이 되려는 야망을 가진 자연어 처리(NLP) 검색 회사였다. 그들이 하려던 일은 구글 스니펫(Google Answer Snippets)와 매우 유사한 것으로, 당시에는 참신한 일이었다. 그들은 구글보다 훨씬 더 나은 방식으로 문맥을 고려하여 질문에 대한 더 심층적인 답변을 제시했다. 핵심 프로덕트로 구글에 도전할 뿐만 아니라 검색, 실리콘 밸리의 전설적인 인물인 피터 틸(Peter Thiel, 페이팔 공동 창업자이자 전 대표)의 지지를 받는 회사는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Tom은 인터뷰에 참석했고 몇 차례의 인터뷰 끝에 안정적인 수입원을 확보하게 되었다. 인생에서 거둔 두 번째 작은 승리였다. 이 일을 받아들이는 건 상상하는 것만큼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큐브식스 미디어(Cube6 Media)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성공도 하지 못했지만, Tom은 감당할 수 없는 집을 구입하는 데 한 번도 가지지 못한 이 모든 돈을 투자해버렸다. 그는 이번에야말로 그라바타(Gravatar)를 매각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부엌과 집 바닥을 수리하는 데 더 많은 돈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파워셋(Powerset)에서 주니어 소프트웨어 개발자라는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된 그는 사업을 포기해야 했다. 더 이상 계약자에게 돈을 줄 수 없어 집 수리도 혼자 끝내야 했다.(무슨 생각이었을까?) 그는 타이밍이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샌디에이고로 돌아가 큐브식스 미디어(Cube6 Media)를 몇 년 더 운영하기로 했다.

 

하지만 넷플릭스 로맨틱 코미디의 어느 한 순간처럼, Tom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다소 실망스러운 아하 모먼트를 겪고 택시를 탄 다음 비행기표를 포기해버렸다. 다음 몇 일동안, 파워셋(Powerset)으로 돌아가서 3개월 후의 입사일을 협상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그는 컨설팅 사업을 잘 마무리하고, 샌디에고에서 거주할 집의 부엌과 바닥 수리를 끝내는 기적을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해야만 부채 상환, 재산세 납부, 주니어 개발자 월급이라는 세 가지로 생계를 꾸릴 수 있었다.

 

3개월 후 Tom은 샌디에고에서 Bay Area로 이사하여 파워셋(Powerset)에 합류했다. 그의 인생을 바꿀 결정이었다.

 

*Bay Area : 캘리포니아 북쪽의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한 동네

**Anti-climactic : 기대에 못 미치는 다소 실망스러운, 분위기를 깨는

 

One thing ends, another begins

새 직장에 입사한 지 6개월, Tom은 마침내 빚을 탕진하고 부업이 된 그라바타(Gravatar)를 팔기 위해 오토매틱(Automattic)에 다시 연락했다. 대화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정확히 무엇이 그들의 마음을 바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침내 그들은 회사를 인수하기로 동의했고 2007년 10월 18일 Tom은 Wordpress 블로그 게시물을 통해 Gravatar가 인수되었음을 세상에 알렸다. 1999년 이후 처음으로 Tom의 순자산은 0달러를 넘었다. 이후 몇 달동안 Tom은 다음 사이드 프로젝트를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이 긴 테이블에 앉아 수다를 떠는 동안, 나는 Fat Tire 맥주를 주문하고 따로 부스에 앉아 있었다. 대여섯 모금쯤 마셨을까, 크리스 원스트래스(Chris Wanstrath, 이하 Chris)가 걸어왔다. 그 당시 내가 Chris를 친구로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 우리는 Ruby 모임과 회의를 통해 서로를 알고 있기는 했다. 서로의 코드가 멋지다는 칭찬을 건네는 정도. 왠진 모르겠지만 나는 그를 부스로 불렀다. 나는 Ruby 코드를 통해 객체 지향 방식으로 Git 저장소에 액세스할 수 있게 해주는 Grit이라는 프로젝트 작업을 시작한 지 일주일 정도 되었었는데, Chris는 Git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당시 몇 안 되는 Ruby 유저 중 하나였다. 그는 앉았고 나는 내가 가진 것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많은 내용은 아니었지만 Chris의 마음을 끌기엔 충분했다. 이를 감지하고 나는 개발자가 Git 리포지토리를 공유할 수 있는 허브 역할을 하는 어떤 웹 사이트에 대해 설명했다. 아이디어는 미완성이었지만 "깃허브(Github)"라는 이름도 있었다. Chris는 곧바로 같이 하자고 이야기했다."

깃허브(Github)의 공동 설립자 Tom

 

 

 

 

 

깃(Git)의 역사

이 문장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보자. "Chris는 Git에 대해 진지해지기 시작한 당시 몇 안 되는 Ruby 유저 중 하나였다."

2007년 깃(Git)은 리눅스(Linux) 커널의 주요 개발자이자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의 "대부"인 리누스 토르발스(Linus Torvalds)가 불과 몇 년 전에 새롭게 개발한 것이었다.

 

깃(Git)의 역사는 흥미롭다.

2005년으로 돌아가서, 당시에는 개발자가 코드에 대해 공동 작업을 하고자 할 경우 버전 제어 소프트웨어에 대한 두 가지 선택권만이 있었다.

 

- Client-Server Model:이것은 모든 코드가 존재하고 모든 사람이 작업하는 중앙 저장소가 하나만 있음을 의미했다. 이 구조는 프로젝트가 코드 유지 관리자에 의해 엄격하게 통제되었음을 의미했다. 누군가 오픈 소스 프로젝트에 기여하고 싶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코드/기여가 얼마나 좋은지 만큼이나 "누구를 알고 있었는지"였다. 따라서 이 모델은 대규모 프로젝트에서 공동 작업을 어렵게 만들었다.

 

- Distributed Model : 이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코드 버전을 갖고 공동으로 작업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유일한 문제는 Distributed Model 제어 소프트웨어의 선두 업체가 서비스에 대해 많은 돈을 청구했다는 점이다.

 

리눅스 커널 프로젝트는 Bitkeeper라는 이름의 당시 최고의 분산 버전 제어 소프트웨어 중 하나를 사용하여 관리되었다. 리누스 토르발스(Linus Torvalds)는 그의 오픈 소스 프로젝트 Linus Kernet에 대한 무료 라이선스 계약을 확보했다. 그러나 2005년에 Bitkeeper는 무료 라이센스를 거부했는데, 이는 아마도 일부 MBA Biz Ops 직원이 회사가 더 이상 Linus 무임 승차자를 감당할 수 없다고 결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Linus는 이것을 개인적으로 진행했고, 또 다른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버전 제어 소프트웨어를 찾는 대신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냈다. 그게 바로 Git이라는 더 나은 오픈 소스 무료 버전 제어 소프트웨어다. 소문에 따르면 Linus와 리눅스의 핵심 개발자가 깃(Git)을 단 일주일 만에 구축했다고 하지만, 과연? 🤷‍♂️

 

Git은 여러 가지 이유로 중요했다. 우선 오픈 소스의 대부가 직접 개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오픈 소스 커뮤니티에서 영리 기업에 이르기까지 큰 연결고리가 되었다는 점이다. Git을 사용하여 개발자는 브랜치(Branch)를 만들고 프로젝트를 포크(fork, 복사)하고 여러 버전에서 동시에 작업한 다음 Bitkeeper에서는 쉽게 수행할 수 없었던 모든 코드를 하나의 마스터 파일로 우아하게 끌어올 수 있었다.

 

Back to the story

Git은 Tesla, Roam 또는 Atom과 유사한 컬트 비즈니스라고 할 수 있다. Git을 마스터한 사람들은 인터넷이 발명된 이후로 인터넷에 일어난 최고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Tom과 Chris는 그 모습을 보면서 확실히 널리 알려지려면 시간이 걸릴 것임을 알았지만, Git Repos를 호스팅하는 "가장 쉬운" 방법을 구축하고 Git이 활성화되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모든 무료 배포판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Ruby 커뮤니티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Chris 포함)은 이미 Git을 배우고 초능력을 발휘하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유저들이 Git은 이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되었다.

 

 

 

Building Github

2007년 10월 19일 Chris와 Tom은 Github에 첫 번째 커밋을 푸시했다. 이 때까지는 단순한 사이드 프로젝트에 불과했는데, 아이디어에 대한 확신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Git이 채택되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초기 플랫폼을 기반으로 구축하는 것이 구체화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시장에서는 선점자가 되어 수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수 있지만 시장 자체가 너무나 작다는 문제가 있었다. VC 용어로 당시 Github을 위한 *TAM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TAM : Total Addressable Market, 진입하고자 하는 전체 시장의 크기.

 

이러한 상황은 Tom과 Chris에게 잘 맞았다. 우선 Tom은 VC가 지원하는 인기 있는 회사인 Powerset에서 계속 일하고 있었고, Cube6 Media와 Gravatar의 경험 덕분에 편안한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을 서두르지 않았다. 반면에 Chris는 CNET에서 일하고 있었고 Git + Ruby on Rails 광신자였기 때문에, 그 프로젝트가 일정 수준 이상 구체화되지 않을지라도 그의 관심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기술을 구축하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가치있는 일이었다. 그는 이미 Git 관련 사이드 프로젝트 작업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고 Github은 이 모든 것을 합친 가장 야심찬 버전이었다. (Github의 개발은 Tom이 Gravatar의 인수를 발표한 지 하루 만에 시작되었다.)

 

Sit and Wait

"GitHub가 즉시 성공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 Git이 보편화되기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 때가 되면 우리는 이미 준비를 끝마친 상태일 것이다."

깃허브(Github)의 공동 설립자 Tom

 

이렇게 앉아서 기다리는 방법의 첫 번째 문제는 두 사람이 프로젝트를 위한 돈을 모을 수 없었음에도 호스팅 소프트웨어에는 많은 돈이 든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Ruby on Rails 커뮤니티에 기대어 웹 호스팅 회사인 Engine Yard에 연락했다. 회사를 홍보하는 푸터 배너(footer banner)를 받는 대가로 무료 호스팅 계약을 체결했다. 그 호스팅 회사는 중요한 프로젝트를 구축하는 개발자에게 도달하기를 원했고, Github은 개발자가 큰 프로젝트에서 원활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두 번째 문제는 수익 창출이었다. Gravatar의 수익화에도 실패했지만, Github이 Git을 채택함으로써 대중화될 것이라는 합리적이지만 완전히 잘못된 예측 속에서도 그들은 이 프로젝트를 지속할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둘은 MBA에 250,000달러의 가격을 매기는 비즈니스 모델을 생각해 냈다.

 

Acquiring Customers

이후 두 사람은 기본적인 사항들을 구축한 다음, 개발자를 위한 Facebook+Linkedin+Google docs+Squarespace+App Store 작업까지 시작했다. Github의 네트워크 효과에서 오는 성장 루프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자.

 

많은 Web 2.0 대응물과 달리 GitHub는 효과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GitHub는 회사와 프로그래머에게 선택권을 제공한다.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를 구축하기 위한 장소로 협업 플랫폼을 무료로 사용하거나 상용 제품의 일부를 생성하는 독점 코드를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폐쇄 소스 소프트웨어로 사용하는 데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것이다.

먼저 모든 사람이 코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려는 누군가의 선의는 GitHub 플랫폼에서 작업하는 오픈 소스 개발자 군단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두 번째로, 회사의 프로그래머는 GitHub가 만든 협업 도구를 활용하여 기밀로 작업하지만 분산된 글로벌 인재 인력은 사용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GitHub는 폐차장 혹은 공장의 조립 라인과 같다.

플랫폼의 프로그래머는 제품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거의 모든 오픈 소스에 필요한 재료를 선택하거나, 개발을 돕거나, 해당 재료를 기존 제품과 통합하기 위해 폐쇄된 작업 공간을 설정할 수 있다.

 

웹사이트에서 호스팅되는 오픈 소스 프로젝트가 많을수록, 오픈 소스 개발자의 Github 군단이 클수록, Github이 오픈 소스에 제공하는 유틸리티가 더 많아지고 사람들이 Github에서 프로젝트를 호스팅하기로 선택하는 이유가 늘어나게 된다.

 

Seeding the network

Network effect는 흥미로운 이론이지만, 유의미한 크기의 네트워크가 아닌 한 의미가 없다. Github의 경우에는 아래와 같이 그들이 의도한 것도 있고, Github의 특성상 자연스럽게 생성된 것들도 있었다.

 

1. 후자(특성상 자연스럽게 생성된 것들)

Single-Player Mode

일반적으로 모든 네트워크 효과 비즈니스는 훌륭한 개인 사용자 활용성에서 시작된다. Github 개인 사용자의 경우에는 Git 사이드 프로젝트를 쉽게 관리하고 호스팅할 수 있는 기능이었다. 모든 협업 도구가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Github을 사용하여 프로젝트를 호스팅하는 것이 자체 서버를 설정하는 것보다 10배는 더 쉬웠던 것이다.

 

Low Threshold Multi-Player mode

Github 사용자를 위한 네트워크 효과는 2계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둘 다 서로를 활용할 수 있지만 각각의 가치는 별도로 생성된다.

네트워크 효과의 첫 번째 계층은 팀이나 공동 작업자를 Github에서 호스팅되는 프로젝트에 초대하고 손쉬운 공동 작업의 이점을 얻을 때 발생한다. 이메일 초대만으로 다른 공간의 사람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기 때문에 이 계층의 임계점 달성은 상당히 쉬웠다.

두 번째 계층은 Github를 통해 프로젝트에 새로운 기여자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첫 번째 협업 계층을 활용하고 팀을 Github에 등록함에 따라 두 번째 팀은 이러한 미니 팀 네트워크의 조합이 Github에서 이 거대한 오픈 소스 개발자 네트워크를 만들면서 더욱 강력해졌다.

 

2. 두 사람이 실제로 수행한 작업

Emailing Ruby on Rails Friends

확실하고 명확한 방법이다. Tom과 Chris는 Ruby on Rails를 통해 만났고, 같은 커뮤니티를 통해 Git에 대해 듣고 흥분했다. 당연히 그들이 첫 번째로 한 것은 지난 3년 동안 회원이 되어 알게 된 사람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Git 프로젝트 관리를 아주 간단하게 만드는 비공개 베타에 초대하는 것이었다.

 

Tom's Open-Source Projects

Grit

이 전체 Github 프로젝트를 촉발시킨 것은 사용자가 Ruby 코드를 통해 객체 지향 방식으로 Git 리포지토리에 액세스할 수 있도록 하는 오픈 소스 라이브러리 Tom이 만든 Grit이었다. 또 다른 Ruby + Git 프로젝트. 물론 Tom은 Github에서 Grit을 호스팅했는데, 이는 이 라이브러리가 Ruby 및 Git 컬트 내에서 주목을 받으면서 Github 또한 홍보하게 되는 효과가 있었다.

 

God

이것은 Tom이 Powerset에서 근무하는 동안 작업하고 있던 또 다른 오픈 소스 프로젝트였다. God은 Ruby 커뮤니티 내에서 큰 추진력을 얻고 있는 또 다른 Ruby 프로젝트였다.

Tom은 자신의 오픈 소스 프로젝트가 인기가 많다는 점을 이용해 Github을 홍보하고, 배포했다.

 

First Big Project

Github에 온보드된 첫 번째 큰 프로젝트는 나중에 Ruby on Rails와 병합된 Merb였다. Merb는 Github의 호스팅 파트너인 Engine Yard에서 개발한 오픈 소스 프로젝트이다.

Engine Yard는 Github와 무료 "배포" 계약을 체결했으며 "사이드 프로젝트"로부터 많은 것을 얻었다.

Github에서 이 대규모 오픈 소스 프로젝트를 구축하고 수백 명의 개발자가 작업하는 플랫폼을 시드함으로써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Drinkups

Github 여정을 시작할 때 그들은 Ruby on Rails 모임에 크게 의존했다. 그러나 제품이 성장함에 따라 Github은 이러한 모임의 내러티브를 Ruby 중심에서 Github 중심으로 변경해야 했다.

그러나 제품은 아직 베타 버전이었고, 이러한 Github을 열심히 사용해줄 사람들을 찾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다.그래서 Github 으로 사람들을 모으는 대신, 맥주를 이용했다. Tom과 Chris는 주요 기술/개발자 회의가 끝난 후 개발자들에게 맥주를 대접하는 데 모든 돈을 투자했다. 이 공짜 맥주는 하드 코어 오픈 소스 커뮤니티를 위해 구축된 신흥 기술에 대한 호스팅 솔루션보다 더 쉽게 사람들을 모을 수 있었다.

 

Mirroring

대규모 오픈 소스는 여전히 어딘가에 호스팅되어야 한다는 문제점이 있었고, 인터넷에서 수동으로 찾아야만 했다.

Github은 이러한 분산형 오픈 소스 프로젝트를 중앙 집중화했으며 Github에서 호스팅되는 초기 프로젝트의 대부분은 기존 프로젝트를 단순히 따라하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매시간/일/주..등으로 실행되는 코드가 있고, 특정 인기 있는 오픈 소스 프로젝트를 확인한 후 변경 사항이 있으면 Github의 "미러링된" 코드베이스에 동일한 변경 사항을 적용했다.

누구나 Github을 사용하여 이 인기 있는 오픈 소스 프로젝트의 최신 버전을 찾고 복사하고 그 위에 쉽게 구축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Making Money

Github은 3개월의 비공개 베타 중 첫 2개월 동안 1000개의 저장소(프로젝트) 구축에 성공했다. Github을 시작하면서 Tom과 Chris가 깨닫지 못했던 것은, 바로 Github의 주요 가치는 호스팅이 아니라 초보 개발자에게 Git의 힘을 풀어주는 것이었다는 점이다. Github는 Git이 보편화되기 위해 필요했던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2008년 4월, Github는 베타 버전에 포함된 2,000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Chris는 코드를 GitHub로 마이그레이션한 온라인 학습 사이트 PeepCode의 설립자인 Geoffrey Grosenbach로부터 이 메시지를 받았다.

저는 저희 회사의 코드를 여기에 호스팅하고 있습니다.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것이 마음이 불편하군요. 수표 한 장이라도 보내도 될까요?

-Peepcode의 창업자, Geoffrey Grosenbach

 

이후 두 사람은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세 번째 공동 설립자 Pj Hyett를 데려왔다.

유료 제품을 출시한 첫날 깃허브는 1000달러를 벌었다. Tom과 Chris가 정규직을 그만두기에는 충분하지 않지만, 뭔가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에는 충분한 금액이었다.

 

Github을 시작한 지 8개월 만에 Powerset은 Microsoft에 1억 달러에 인수되었다.

30만 달러의 보너스(3년 이상), 그리고 당시 Github이 번 돈과 주니어 개발자 급여의 차익 사이에서 Tom과 두 공동 설립자들은 Github에 몰두하기로 결정했다.

 

Microsoft Github 인수

그리고 2018년 6월, Github는 Microsoft에 75억 달러(한화로 약 8조 원)에 인수되었다.

2016년 기준, 적자만 6,600만 달러였던 Github는 자체 상장보다는 인수되는 것을 희망해왔고, 오픈 소스에 친화적인 Microsoft의 CEO 사티아 나델라에게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오픈소스의 대명사로 불리던 Github이었기에, 대기업인 MS에 인수가 된다는 사실에 많은 우려의 목소리가 있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일종의 포트폴리오 역할을 하는 개발자에게는 필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Insight

-Tom이 개발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과연 Github의 성공이 있었을까? 무엇을 하든 궁극적으로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얼마나 많은 실패가 있던지, 수익 창출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던지 버틸 수 있는 힘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데서 나온다.

-물론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환경 또한 중요하다. All-in은 충분히 이 사업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판단된 이후에 실행해도 늦지 않다. 나의 생계를 이어가되,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일과 연관된 분야를 선택할 수 있다면 사이드잡으로 사업을 시작하고 그 사업이 충분히 무르익기까지 여유있게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

 

출처 및 참고 링크

https://read.first1000.co/p/-github?triedSigningIn=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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